한라산 등반
늦가을 다소 늦은 감이 있는데, 제주도라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단단히 챙겨 입고 길을 나섰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바로 알게 되었다. 한라산은 가을이 등반하기 제일 좋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날씨도 적당했지만 여기저기 예쁘게 단장한 단풍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도답게 산길에는 크고 작은 현무암들로 길이 만들어져있었다. 울퉁불퉁한 지면을 피해 걷느라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이것도 한라산의 특색이리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사뿐히 밟고 나아갔다.
사람 하나 지나갈만한 작은 오솔길들을 수없이 걷고 나서야 나타난 해발 1300, 1500미터 팻말들.
그리고 저 멀리 해안선과 마을들을 바라보며 산 중턱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후 나타난 산봉우리. 저 멀리 길도 없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나무와 돌,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바라보며 저들은 저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한라산이 생긴 이래로 쭉 저렇게 있었을 것이다. 말 많고 탈많은 아랫동네의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지바른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근심 걱정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구나.
한라산은 설악산과 다르게 오르내리는 길 없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올라가야 한다. 한참을 부지런히 가파든 계단들을 오르고 나니 드디어 정상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멋들어진 봉우리들과 거기에 어우러져 아름다운 백록담. 생애 처음 만난 백록담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산꼭대기에 이렇게 거대한 연못이 만들어져 있었을까? 그저 바라보고 감탄하는 일이 전부였다.
마침 물이 말라있어서 최고의 절경은 아니었지만 규모와 위엄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동스러웠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며 정상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설악산처럼 산장에서 잘 수도 없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봄이나 여름의 한라산을 다시 오를 그날을 기약해본다.